고양이 나그네

신벌이 거두어졌다. 그 말을 서둘러 증명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길고 긴 시간 동안 움츠렸던 것이 많았던 탓인지.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바람이 불고, 곳곳에 푸른 새싹이 기지개를 켜며,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이 한가을에 때아닌 풀빛으로 가득한 봄을 보게 된 가운데. “먀아…?” 중간에 마주친 이상한 데르를 개나리로 바꾸고 걷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

슈바르츠의 다음 목적지는 자연스레 [이리드니]가 되었다. 펄의 고향이었을 땅이자, 검은 세르족이 일군 도시. 물론 오로라고 하는 걱정거리가 있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정보 길드에서 산 지도를 펼쳐보던 슈바르츠가 고민하고 있었을 때. 지도 구하는 법을 알려줬던 론이 툭 던진다. “네 형이라면, 내가 손을 써주마.” “먀?” 잠깐 설명하자면, 이곳 [세...

「네 놈!」 깡-! 모습을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징벌자인 푸른 쥐, 알이 자그마한 검을 들고서 맞선다. 신관의 모습을 한 징벌자, 명이 그 뒤에서 예를 차리며 사과한다. 「우리도 할 말이 좀 있습니다-만,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게 좋겠지요.」 「…너와의 ‘약속’을 어긴 부분에 관해서는 정말 미안하다.」 “그걸 아는 게,” “먀, 먀악-!” 알명과 론이 오물...

핏물이 가득하던 [에추르]에 때 이른 겨울꽃이 만발했다. 겨울꽃이 된 데르들의 무한히 증식하는 무언가를 떼어내어, 그것들을 따로 가공해 만들었을 산은, 그 거대한 데르는 지금. 그저 악취를 풍기는 거대하고 거대한 오물의 산이었지만. “XX, 신이란 것들이 남의 땅에 X이나 뿌리고….” “먀아아….” 그런 오물 앞으로 슈바르츠를 반쯤 끌고 온 용병왕이 혀를 ...

산이다. 거인이라는 말도 모자란다. 그것은 산이니까. 이르게 찾아온 겨울을 내뱉는 산이었으니까. “뭐, 뭐야….” 갑자기 나타난 거인에 당황한 건, 이번 사태가 처음인 이들만이 아니었다. 제법 오랜 시간, 이 땅을 지켜왔던 이들마저 당황했다. 그런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것도 모자라, 기도하고 절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아아- 신이시여-!” “어서...

슈바르츠가 노란 꽃잎들에 파묻힐 때쯤,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무작정 들이닥치던 데르도. 그 데르에 더해 세뇌당한 동료들을 상대하던 용병과 모험가도.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신을 부르짖으며, 그들을 방해하던 신관도. “먀아-.” 노란 꽃잎들 사이에서 상체만 겨우 나온 슈바르츠가 고개를 기운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바로 앞에서 이상한 데르가 ...

전화위복(轉禍爲福) 간단히 풀어 쓰면 위기를 기회로. 좋은 말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꺾어버리는 것보다 나으니까. 하지만, 그 ‘위기’라는 게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거라면? 막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거라면? 아니, 그래. 이 두 정보는 아는 이가 극도로 적었으니, 잠시 제외해 두자. 그렇다 쳐도. 천 년이 넘는 긴 시간...

용병왕국 [세페]의 척박함은 건국 당시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도 그럴 게 이 땅에는 정말, 정말 아무것도 없는 탓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마법을 써도 농사가 안되는, 이상할 정도로 무정한 흙들뿐. 또, 저 드넓은 평지에는 그 어느 때에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이 땅을 둘러싼 절벽들이, 이 땅으로 오려던 바람을 모두 잡아먹은 듯이. 그렇게 고요...

※다소 흉측한 장면이 서술됩니다. 되도록 상상하지 말아 주세요. 카페에서 일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유용했다. 흔히 정보를 얻기 쉬운 곳으로 손꼽히는 술집보다 이용자가 다양했는데. 덕분에 다양한 연령층의 조언과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슈바르츠와 펄이 귀여워서 가능한 정보수집이었다.) 뭐, 다른 것보다, 슈바르츠는 술에 취한 사람을 마주하...

『역시 우리 용병단이 최고 최강임다!』 결론부터 말하면, 슈바르츠는 당분간 이 카페에서 일해야 했다. 오로가, 그의 막내 형이 무려, 이 가게의 창문을 깨고 달아난 탓이다. 【암튼 날 도와준다는 뜻으로 알아듣겠슴다!】 【아니, 형!?】 【와장창-!】 용병왕국은 기본적으로 모든 건물을 튼튼하게 짓는다던데. 아무리 단단히 강화한 유리도, 저 커다란 덩치...

꽤 직설적인 물음을 들은 슈바르츠의 반응은 단순하다면 단순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와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니아니, 나쁘다는 게 아니라여!>” “먀아….” -드, 들어봐여, 슈바르츠! 자, 형아가 지금 막, 추궁하는 것처럼 보임까?! “먀아…?” 애석하지만 울먹이기 시작한 눈에는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허둥지둥...

싸움은 경비대가 찾아온 뒤 간신히 진정되었다. 둘 다 길거리에서 싸우지 말라는 훈계를 듣고 나서야 풀려난 건 당연했다. “<흑, 내 순하고 착한 동생님이 변해버렸어여…!>” “먀아아~?” 실없는 소리를 얹는 바람에 재차 싸움이 벌어질 뻔했으나, 보다 못한 펄이 강제 조치를 취했다. 세르족의 힘을 사용해서 둘의 감정을 진정시킨 거다. 뭐, 슈바...